[오래전 오늘] 2026-08-14

1.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학순 할머니 최초 공개 증언 (1991)
📝 사건 설명
1991년 8월 14일, 고(故) 김학순 할머니는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음을 대한민국 사회와 국제사회에 최초로 실명 공개 증언했습니다. 당시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부인하며 민간 업자들에 의한 민간 행위일 뿐이라고 주장하던 시기였습니다.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 있는 고발은 침묵 속에 묻혀 있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참상을 세상 밖으로 끌어올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증언 이후 수많은 피해자 할머니들의 연쇄 증언과 진상 규명 운동이 이어졌고,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시위'와 국제사회의 연대 운동으로 확산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 역사적인 날을 기념하여 매년 8월 14일을 국가기념일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로 지정해 추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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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1991년 8월 14일, "내가 바로 살아있는 증거다" - 고(故) 김학순 할머니 최초 증언
2. 한일협정 비준동의안 국회 단독 가결 (1965)
📝 사건 설명
1965년 8월 14일, 여당인 민주공화당은 야당과 학생·시민들의 격렬한 반대 속에서 '한일 기본조약 및 부속협정(한일협정) 비준동의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단독으로 가결 처리했습니다. 박정희 정부는 경제 개발 자금 확보와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를 목적으로 한일 국교 정상화를 조속히 추진했으나, 대일 청구권 자금의 미흡한 성격 규정, 독도 영유권 및 강제동원 피해 보상 문제 등이 모호하게 처리되었다는 이유로 범국민적 반대 운동(6·3 항쟁 등)에 직면했습니다. 야당 의원들의 집단 사퇴 속에서 전격 처리된 한일협정은 이후 한국 경제 성장의 자금이 되었다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과거사 청산의 명확한 기회를 놓쳐 한일 간 지속적인 갈등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역사적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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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뉴스] 한일협정 비준동의안 국회 가결 및 한일 국교 정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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