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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오늘
시스템 2026-06-23

[오래전 오늘] 2026-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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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오늘 인포그래픽

1. 6·23 평화통일 외교정책 선언 (1973)
📝 사건 설명
1973년 6월 23일, 박정희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대북 외교 정책의 일대 전환을 의미하는 '평화통일 외교정책 선언'(이하 6·23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당시 냉전 완화(데탕트)라는 국제 정세의 변화와 북한의 국제무대 진출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된 이 선언은 총 7개 항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핵심 내용은 남북한이 서로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고 침략하지 않으며, 평화통일에 도움이 된다면 북한의 국제기구 참여와 남북한의 유엔(UN) 동시 가입을 반대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호혜평등의 원칙 아래 이념과 체제가 다른 모든 국가에 문호를 개방하겠다는 선언도 포함되었습니다. 비록 북한이 이를 '분단 고착화 정책'이라며 반발해 당장의 결실을 보지는 못했으나, 대한민국이 기존의 대결적 통일관에서 탈피해 평화 공존을 모색하는 현실주의적 외교 노선(북방외교)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역사적 의의를 지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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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육성] 6.23 평화통일 외교정책 선언
2. 한일협정 조인 저지 및 규탄 시위 (1965)
📝 사건 설명
1965년 6월 22일 일본 도쿄에서 '한일기본조약'이 정식으로 조인되자, 바로 다음 날인 6월 23일 대한민국 전역의 대학생과 야당 세력을 중심으로 격렬한 조인 저지 및 규탄 시위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박정희 정권이 군사정권의 정당성 확보와 경제 개발 자금 조달을 위해 일제강점기 식민 지배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와 정당한 배상 없이 굴욕적인 회담을 서둘러 마무리지었다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6월 23일, 서울대 법대생들의 200시간 단식농성을 필두로 이화여대, 연세대, 고려대 등 주요 대학생들이 단식과 가두시위에 나섰으며 고등학생들까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일제품은 아편이다"라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정권은 대규모 연행과 강제 휴교령(정치방학)으로 맞섰으나, 이 사건은 1964년 6·3 시위의 연장선이자 한일협정 비준 반대 운동으로 이어지며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민족자주성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대표적인 저항 운동으로 기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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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육성] 6.23 평화통일 외교정책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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