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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오늘
시스템 2026-05-21

[오래전 오늘] 2026-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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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오늘 인포그래픽

1. 사도세자 사건 (임오화변) (1762)
📝 사건 설명
배경: 조선 영조 38년(1762), 왕세자였던 사도세자(이선)는 아버지 영조와의 극심한 성격적 갈등과 노론·소론 간의 당쟁 속에서 왕실의 정치적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영조는 학문과 통치술에서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세자를 지속적으로 의심하고 질책했습니다.
전개: 결국 영조는 노론 대신들의 주청을 받아들여, 세자를 폐하고 왕위 계승 서열에서 제외시킨 뒤 쌀 뒤주에 가두는 극형을 내립니다. 세자는 뒤주 안에서 8일간 물과 음식도 공급받지 못한 채 사경을 헤매다가, 1762년 7월 4일(음력 윤5월 21일) 결국 아사(굶어 죽음)합니다. 이 비극은 ‘임오화변(壬午禍變)’ 또는 ‘임오옥’으로 기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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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의의: 사도세자 사건은 조선 왕조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가족사이자, 왕권과 신권의 대립, 당파 싸움이 한 개인을 어떻게 파멸로 이끌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훗날 세자의 아들인 정조가 왕위에 오른 후, 아버지를 ‘장조’로 추존하고 억울함을 풀어주려 노력했지만, 이 사건은 조선 후기 정치사의 깊은 상처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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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를 클릭하여 관련 영상 보기 ([KBS 역사저널 그날] 너무도 다른 부자, 영조와 사도세자)
2.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5월 21일의 발포 (1980)
📝 사건 설명
배경: 1979년 10·26 사건 이후,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12·12 군사반란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고,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습니다. 이에 광주 시민과 학생들은 민주주의 회복과 계엄 철폐를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에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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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 1980년 5월 21일, 광주에서는 시위대가 전남도청과 전남대학교 앞으로 결집했습니다. 계엄군과 시민 대표 간의 협상이 결렬되고, 군 당국의 공수부대 철수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사태는 극단으로 치달았습니다. 낮 12시 전남대 앞, 오후 1시경 전남도청 앞에서 계엄군이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 집단 발포를 감행했고, 이로 인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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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포 직후, 시민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예비군 무기고와 경찰서에서 총기를 탈취해 ‘시민군’을 조직하고 무장 저항에 나섰습니다.
역사적 의의: 5월 21일의 발포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최대 분수령이었습니다. 이후 시민군이 조직되어 광주는 열흘간 계엄군에 맞서 자치 공동체를 운영했고, 이는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사에 길이 남을 시민 불복종과 저항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5·18은 이후 진상 규명을 거쳐 국가 기념일(5·18 민주화운동 기념일)로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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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를 클릭하여 관련 영상 보기 ([CBS 뉴스] 5.18 민주화운동에 함께 한 기독교인들 – 계엄군 물러난 21일 이후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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