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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오늘
2026-03-11

[오래전 오늘] 2026-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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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오늘 인포그래픽

3월 11일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참된 기업가 정신'과 '언론 자유를 향한 투쟁'이라는 두 가지 굵직한 발자취가 남겨진 날입니다. 오늘 우리가 되새겨야 할 주요 사건 두 가지를 선정하여 설명해 드립니다.

1.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 박사 서거 (1971)

📝 사건 설명
대한민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가 중 한 명인 유일한(柳一韓) 박사가 1971년 3월 11일, 향년 76세를 일기로 서거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돈을 버는 경영자가 아니라,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사업가로서 평생을 '국가와 동포'를 위해 헌신한 인물입니다.

배경 및 전개: 유일한 박사는 "건강한 국민만이 주권을 찾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1926년 유한양행을 설립했습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숙호작전 등)에 참여했고, 해방 후에는 기업을 경영하며 한국 최초로 주식 상장과 종업원 지주제를 도입하는 등 선진적인 경영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결과 및 의의: 그가 세상을 떠나며 남긴 유언장은 사회에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아들에게는 "스스로 앞길을 개척하라"며 단 한 푼의 재산도 물려주지 않았고, 전 재산을 교육 및 보건 사회사업을 위해 기부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역사상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가장 상징적인 사례로 꼽히며, 오늘날까지도 많은 기업인과 시민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유일한 박사의 마지막 편지)

2. 동아일보 기자 강제 해직과 '동아투위' 결성 (1975)

📝 사건 설명
1975년 3월 11일은 대한민국 언론사에서 가장 비극적이면서도 치열했던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와 그에 따른 기자들의 강제 해직이 본격화된 시기입니다. 박정희 유신 정권의 언론 탄압에 맞서 언론 자유를 외치던 기자들이 거리로 쫓겨난 날입니다.

배경 및 전개: 1974년 말, 유신 정권은 비판적인 기사를 쓰는 동아일보를 압박하기 위해 광고주들에게 압력을 넣어 광고를 무더기로 취소시켰습니다. 이에 신문 지면이 하얗게 비어 나가는 '백지광고' 사태가 벌어졌고, 시민들은 성금을 모아 격려 광고를 냈습니다. 그러나 정권의 압박에 굴복한 경영진은 1975년 3월 11일부터 자유언론실천운동을 주도하던 기자들을 폭력을 동원해 강제로 쫓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결과 및 의의: 이때 해직된 113명의 언론인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를 결성하여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섰습니다. 이 사건은 언론이 권력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그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상징이 되었습니다. 또한 훗날 국민주 신문인 '한겨레' 창간의 뿌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75년 3월, 동아일보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 언론 자유의 역사)

오늘 소개해 드린 유일한 박사의 숭고한 정신과 기자들의 용기 있는 투쟁은 현재의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중요한 가치들입니다. 혹시 이 중 특정 사건에 대해 더 깊이 있는 분석이나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궁금하시다면 말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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