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오늘] 2026-02-28

2월 28일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변곡점이 된 날이자, 한반도의 운명을 가를 뻔했던 긴박한 외교적 순간이 기록된 날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주요 사건들을 정리해 드립니다.
1. 2.28 민주운동 (1960)
📝 사건 설명
1960년 2월 28일, 대구에서 일어난 이 운동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발생한 최초의 자발적 학생 민주화 운동입니다.
당시 이승만 정권과 자유당은 장기 집권을 위해 부정선거를 획책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대구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야당 부통령 후보 장면 박사의 강연회에 학생들이 참석하지 못하도록, 당국은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게 강제 등교령을 내렸습니다. "토끼 사냥을 간다", "영화 단체 관람을 한다"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명분이었죠.
이에 분노한 경북고, 대구고 등 대구 지역 8개 고등학교 학생들은 "우리에게 자유를 달라", "학원(학교)을 정치 도구화하지 말라"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 순수한 외침은 시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냈고, 이후 마산의 3.15 의거를 거쳐 4.19 혁명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민주주의의 불꽃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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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첫 함성, 2.28 민주운동)
2. 제2차 북미정상회담 '하노이 노딜' (2019)
📝 사건 설명
2019년 2월 28일은 전 세계의 이목이 베트남 하노이에 쏠려 있던 날입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만난 제2차 북미정상회담의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전날 만찬까지만 해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하노이 선언'이 나올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우세했습니다. 하지만 28일 당일, 오찬과 서명식이 전격 취소되면서 분위기는 급랭했습니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를 대가로 주요 경제 제재 해제를 요구했으나, 미국은 영변 외의 추가적인 핵 시설 폐기를 포함한 '빅딜'을 요구하며 맞섰습니다.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회담은 **'노딜(No Deal)'**로 끝났고, 이는 이후 한반도 비핵화 협상과 남북 관계가 장기 교착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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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긴박했던 하노이 1박 2일, 결렬의 순간 복기)
역사 해설가의 한 마디:
오늘 살펴본 두 사건은 '행동하는 양심'이 역사를 바꾸는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점(2.28), 그리고 '정교한 외교 전략'이 평화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하노이 회담)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혹시 2.28 민주운동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4.19 혁명까지 연결되었는지 그 상세한 계보가 궁금하신가요? 질문 주시면 바로 설명해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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