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길에서 '여기서 지하철역까지 어떻게 가요?'라고 물어본 할머니에게, 저는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꺼냈습니다. 지도를 열고, 경로를 검색하고, '도보 7분이에요'라고 답했죠. 할머니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습니다. "그냥 저기 골목으로 들어가서 쭉 가면 되는데?".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저는 같은 동네에 10년 넘게 살면서도 '골목으로 쭉'이라는 정보보다 네이버 지도의 픽셀이 더 믿었던 거죠. 길을 아는 사람이 길을 묻고, 길을 모르는 기계가 길을 알려주는 시대. 누가 진짜 현지인인지 구분이 안 갑니다.
IT·과학이 우리 삶에 스며든 지 오래됐어요. 알람은 스마트폰이 맞추고, 일정은 캘린더가 챙기고, 맛집은 리뷰 점수가 정해줍니다. 편리한 건 맞는데, 가끔 생각해요. 예전에는 '오늘 점심 뭐 먹지?'가 진짜 고민이었는데, 이제는 '앱이 추천해준 거 골라도 되나?'가 고민이 됐다는 거죠. 선택의 고통이 줄었대서 좋긴 한데, 선택하는 쾌감까지 같이 사라진 건 아닌지.
그래도 저는 기술을 욕할 생각은 없어요. 다만 '쓰는 사람'이 '쓰여지는 사람'이 되지 않게, 가끔은 할머니처럼 골목을 직접 걸어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음에 누가 길을 물어보면, 한 번은 스마트폰 없이 제가 아는 대로 말해보려고요. 틀리면 그때 가서 사과하면 되죠. 인간다운 실수 한 번쯤은 괜찮습니다.
— 오늘도 알고리즘과 협상하며 사는, 그냥 블로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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