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오늘] 2026-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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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엔 소총회, 남한 단독 총선 결정 승인 (1948년)
**📝 사건 설명**
1948년 2월 26일은 한반도 분단이 사실상 국제적으로 공식화된 비극적인 날이자,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길을 열게 된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 날입니다. 1947년 유엔은 한반도에서 자유로운 남북 총선거를 통해 통일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유엔 임시한국위원단(UNTCOK)을 파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소련과 북한은 유엔 결의를 거부하고 위원단의 입북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유엔 임시한국위원단은 유엔 소총회(Little Assembly)에 "선거를 실시할 수 있는 지역에서만 선거를 실시하라"는 권고안을 제출했고, 소총회는 1948년 2월 26일 찬성 다수로 이를 승인했습니다.
이 결정은 미소 냉전 구도 하에서 한반도가 이념적으로 양분되어 있음을 국제 사회가 인정한 것으로, 사실상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확정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어서 1948년 5월 10일 제헌 국회의원 총선거가 남한에서 단독으로 실시되었고, 같은 해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이후 남북한 각각의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고, 첨예한 대결 구도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한반도 분단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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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대한민국 근현대사 52강, 유엔 한국 임시위원단과 5.10 총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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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시인 김지하 구속 및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서막 (1974년)
**📝 사건 설명**
1974년 2월 26일은 박정희 유신정권의 폭압적인 통치가 극에 달했던 시기를 상징하는 날입니다. 이날 저명한 시인이자 반유신 운동가였던 김지하 시인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되었습니다. 당시 그는 <동아일보>에 유신 독재의 폭압을 고발하는 '양심선언'이라는 글을 발표하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의 구속은 단순한 한 시인의 탄압을 넘어, 이후 유신정권이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대표적인 사건인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인혁당 재건위) 사건'과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의 서막을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권은 김지하 시인의 구속을 시작으로,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라는 지하 조직이 학생 운동을 배후 조종하고 있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펼치며 대규모 탄압을 자행했습니다. 이 조작된 사건으로 수많은 민주화 운동가와 학생들이 고문당하고 희생되었으며, 특히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 8명은 1975년 4월 9일, 대법원 확정 판결 18시간 만에 전격적으로 사형이 집행되는 '사법살인'이라는 비극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은 유신 정권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어떻게 유린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며 한국 현대사의 가장 어두운 부분 중 하나로 기록되었고, 훗날 민주화된 사회에서 재심을 통해 관련자들의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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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MBC 그날 - '죽은 자들의 부활'... 인혁당 재건위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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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규명 특별위원회 구성 (1987년)
**📝 사건 설명**
1987년 2월 26일은 전두환 정권의 군부 독재에 맞서 민주화의 열망이 폭발하던 중요한 시점에 발생한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이날, 국민적 공분을 샀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한 국회 특별조사위원회(특위)가 구성되었습니다. 1987년 1월 14일,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이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초기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비상식적인 발표로 사건을 은폐하려 했으나, 최환 검사 등 양심적인 인사들의 폭로로 고문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며 전국민적인 분노를 촉발시켰습니다.
국민들의 분노와 민주화 요구가 거세지자, 국회는 야당의 강력한 요구를 받아들여 2월 26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에 합의했습니다. 비록 이 특위가 당시 정권의 방해로 실제 진상 규명에 많은 한계를 가졌지만, 이는 독재 정권에 대한 국민적 압력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였습니다.
박종철 고문치사 특위 구성은 단순한 한 학생의 죽음을 넘어, 전두환 정권의 폭압적인 통치와 인권 유린에 맞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국민적 열망이 폭발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이후 전두환 정권의 4.13 호헌조치를 만나 국민적 저항을 더욱 가속화시켰고, 결국 6월 민주 항쟁과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라는 민주화의 거대한 흐름을 이끌어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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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YTN 다큐 - 다시보는 그날, 1987년 1월 14일 박종철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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