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오늘] 2026-01-21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근현대사 및 정치사 해설가입니다. 2026년 1월 21일, 미래의 어느 날을 상정하고 '1월 21일'이라는 날짜에 우리 역사에 어떤 중요한 사건들이 있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목할 사건들은 대한민국이 격동의 시기를 거치며 발전해 온 과정과 맞닿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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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21 사태 (김신조 청와대 습격 미수 사건) (1968)
**📝 사건 설명**
1968년 1월 21일, 대한민국은 한반도를 전쟁 직전의 위기로 몰아넣을 뻔했던 충격적인 사건에 직면합니다. 바로 북한 특수부대 '124군 부대' 소속 무장공비 31명이 대통령 박정희 암살을 목표로 청와대 코앞까지 침투하려 했던 이른바 '1.21 사태' 또는 '김신조 청와대 습격 미수 사건'입니다.
이들은 국군 복장으로 위장하고 최전방 휴전선을 넘어 서울로 잠입했습니다. 청와대와 불과 100미터 떨어진 자하문 부근까지 접근한 이들은 우연히 검문하던 경찰과 마주치면서 정체가 발각되었고, 격렬한 총격전이 벌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시민과 경찰관 등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침투조 대부분이 사살되거나 자폭했지만, 유일하게 김신조 한 명이 생포되었습니다. 김신조의 증언으로 북한의 계획적인 침투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고, 청와대 습격 임무가 명확해졌습니다.
이 사건은 남북 간의 긴장을 극도로 끌어올렸으며, 북한의 무력 도발 의지를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 사건을 계기로 향토예비군을 창설하고 방위산업을 육성하는 등 자주국방 역량을 강화하는 데 박차를 가했습니다. 또한, 사건 발생 이틀 뒤 북한이 미국 정보함 푸에블로호를 나포하는 등 일련의 도발이 이어지면서 한반도 상황은 일촉즉발의 위기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1.21 사태는 냉전 시대 남북 대치의 엄혹함을 상징하는 동시에, 국가 안보의 중요성을 각인시킨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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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진상규명 요구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성명 발표 (1987)
**📝 사건 설명**
1987년 1월 21일은 전두환 군사정권의 폭압에 맞서 민주화를 향한 불길을 지핀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입니다. 바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정의구현사제단)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을 폭로하고 정부의 은폐 시도를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한 날입니다.
사건의 발단은 그해 1월 14일,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이 경찰의 불법 연행 후 조사 과정에서 고문으로 사망한 데서 시작됩니다. 당시 경찰과 정부는 박종철이 책상을 탁 치자 '억' 하고 쓰러져 죽었다는 허위 발표로 사건을 은폐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정의구현사제단은 의료인 및 양심적인 관계자들을 통해 입수한 정보를 바탕으로, 박종철이 물고문 등 잔혹한 고문을 받다 사망했으며, 경찰이 시신 화장을 서두르는 등 진실을 조직적으로 은폐하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정의구현사제단의 1월 21일 성명 발표는 정부의 거짓말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성명은 단순한 정보 폭로를 넘어, 당시 정권의 비도덕성과 폭력성을 만천하에 드러내며 민주화를 염원하는 국민들의 마음속에 깊은 불씨를 지폈습니다. 이 사건은 6월 민주 항쟁의 도화선이 되어 시민 사회 각계각층의 참여를 촉진했고, 결국 군사정권의 몰락과 직선제 개헌이라는 민주화의 큰 흐름을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정의구현사제단의 용기 있는 행동은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종교계와 시민사회의 중요한 역할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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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진실 폭로했던 정의구현사제단은? - 31년 전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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