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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오늘
2026-01-16

[오래전 오늘] 2026-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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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오늘 인포그래픽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결정적 순간을 분석하고 그 의미를 전달하는 역사 해설가입니다.

**1월 16일**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분단의 비극이 구체화되기 시작한 날이자, 동시에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이 뜨겁게 타오르던 시점의 중요한 변곡점이 있는 날입니다. 요청하신 2026년 1월 16일을 맞아, 역사의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주요 사건들을 정리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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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소공동위원회 예비회담 개최 (1946)

**📝 사건 설명**

- **사건 개요**: 1946년 1월 16일, 서울 덕수궁 석조전에서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미소공동위원회 예비회담'이 열렸습니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 3상 회의 결과에 따라, 한반도에 임시 민주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고자 미국과 소련의 대표단이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마주 앉은 것입니다.

- **전개 과정**: 이 회담은 본회담의 구성과 운영 방식을 결정하기 위해 2월 초까지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시작부터 난항을 겪었습니다. 신탁통치에 반대하는 단체(주로 우익)를 정부 수립 협의 대상에 포함할 것인가를 두고 미국과 소련이 팽팽하게 맞섰기 때문입니다.

- **역사적 의의**: 이 회담은 해방 정국에서 남북 분단을 막고 통일 정부를 세울 수 있었던 마지막 공식적 기회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양측의 이데올로기 차이와 냉전의 시작으로 인해 결국 결렬되었고, 이는 한반도가 남북으로 고착화되는 결정적인 배경이 되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EBS 역사채널e - 38선과 미소공동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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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보도 확대와 범국민적 분노 (1987)

**📝 사건 설명**

- **사건 개요**: 1987년 1월 14일,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이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다 사망했습니다. 이틀 뒤인 **1월 16일**은 경찰이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황당한 변명을 내놓으며 사건을 은폐하려던 시도가 언론 보도를 통해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알려지고, 시민들의 분노가 임계점에 도달하기 시작한 날입니다.

- **전개 과정**: 당시 전두환 정권은 사건을 단순 심장마비로 조작하려 했으나, 부검의의 증언과 기자들의 추적 보도로 고문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1월 16일 전후로 주요 신문들은 검열을 뚫고 이 소식을 비중 있게 다루었으며, 이는 전국적인 추모 열기와 정권 규탄 시위로 번졌습니다.

- **역사적 의의**: 이 사건은 한국 현대사에서 '민주주의의 문'을 연 6월 민주항쟁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한 대학생의 죽음이 침묵하던 시민들을 거리로 나오게 했고, 결국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라는 역사적 승리를 이끌어내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KBS 역사저널 그날 - 1987 박종철, 그날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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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한·일 국방장관 회담과 안보 협력 논의 (2011)

**📝 사건 설명**

- **사건 개요**: 2011년 1월 16일,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과 일본 방위상이 서울에서 만나 한일 국방장관 회담을 가졌습니다. 이 회담에서는 한일 양국 간의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과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체결에 관한 논의가 본격화되었습니다.

- **전개 과정**: 당시 북한의 연평도 포격전(2010년) 이후 안보 위기감이 고조된 상황에서 한·미·일 안보 협력을 강화하려는 취지로 추진되었습니다. 하지만 과거사 문제와 독도 영유권 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과의 군사 협력은 국내에서 거센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 **역사적 의의**: 이 사건은 동북아시아의 냉전적 구도 속에서 한일 관계가 '과거사'라는 특수성과 '안보 협력'이라는 현실적 필요성 사이에서 어떻게 갈등하고 조정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입니다. 이후 GSOMIA는 실제 체결과 파기 위기를 반복하며 한국 외교의 핵심 쟁점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뉴스 자료: 한일 국방장관 회담 현장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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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해설가의 한마디:**

1월 16일은 한반도의 **'분단'**을 논의하던 1946년과, 그 분단 체제 아래서 신음하던 민주주의를 **'해방'**시키려던 1987년의 기억이 교차하는 날입니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는 첫걸음입니다. 위 영상들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의 가치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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