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오늘] 2026-11-06

1.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의 10·26 사건 전모 발표 (1979년)
📝 사건 설명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격으로 사망한 직후, 국가 안보와 치안을 수습하기 위해 비상계엄이 선포되었습니다. 이후 사건 수사를 지휘하던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 겸 국군보안사령관 전두환 육군 소장은 1979년 11월 6일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고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의 전모 및 수사 결과를 공식 발표했습니다. 전두환 본부장은 김재규의 범행을 '과대망상증에 걸린 자의 정권 장악을 위한 계획적 단독 범행'으로 규정하였습니다. 이 공식 수사 발표는 정권의 공백기 속에서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이 권력의 전면에 급부상하는 결정적인 정치적 계기가 되었으며, 불과 한 달 뒤인 12·12 군사반란으로 이어지는 현대사의 중대한 변곡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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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봄 실제》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 경위를 발표하는 계엄사합동수사본부장 육군소장전두환-실제 육성《전두환 보안사령관》1979-11-06
2. 맥아더 사령관의 중공군 참전 공식 확인 성명 발표 (1950년)
📝 사건 설명
6·25 전쟁 발발 후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승세를 잡은 국군과 유엔군은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까지 북진하여 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950년 10월 하순부터 한반도 북부에 은밀히 침투한 중국 인민지원군(중공군)의 기습 1차 공세로 전선은 급격히 혼란에 빠졌습니다. 이에 유엔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1950년 11월 6일 유엔 본부에 보내는 특별 보고 및 공식 성명을 통해 "공산 중국의 정규군 병력이 대규모로 불법 참전하여 새로운 전쟁 국면에 직면했다"고 공식 천명했습니다. 맥아더의 이 성명은 한반도 내 국지전 성격의 무력 충돌이 냉전 체제 하의 대규모 국제전으로 전환되었음을 전 세계에 알린 선언이었으며, 이후 전선의 후퇴(1·4 후퇴)와 장기적인 소모전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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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경고, 아무도 믿지 않았다 | 6·25 중공군 개입 1950, 역사의 결정적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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