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오늘] 2026-09-29

1. 서울 수복 기념식 거행 및 중앙청 태극기 게양 (1950년)
📝 사건 설명
1950년 6·25 전쟁 발발 후 단 사흘 만에 수도 서울을 북한군에 빼앗겼던 대한민국은, 9월 15일 맥아더 장군이 지휘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발판 삼아 수도 탈환 작전을 전개했습니다. 국군 해병대와 미군은 치열한 시가전 끝에 9월 28일 서울을 완전히 장악했고, 이튿날인 9월 29일 정오 중앙청 홀에서 역사적인 '서울 수복 기념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승만 대통령과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이 참석해 수도 탈환을 공식 선포했으며, 중앙청 국기게양대에는 90일 만에 다시 태극기가 게양되었습니다. 이는 국가적 존립 위기를 극복하고 전세를 완전히 역전시켜 38선 돌파와 북진의 발판을 마련한 상징적 사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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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스페셜] 6·25 전쟁 최대의 반전, 9·28 서울수복
2. 제1차 한일회담 예비회담 결렬 (1953년)
📝 사건 설명
1953년 9월 29일, 6·25 전쟁 휴전 협정 체결 직후 도쿄에서 진행되던 제1차 한일회담 예비회담이 공식적으로 결렬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해방 이후 미결 과제였던 식민 지배에 대한 사죄, 어업 평화선(이승만 라인) 존중, 문화재 반환, 대일 청구권 문제를 강력히 제기했으나, 일본 측 대표인 구보타 간이치로가 "일본의 식민 지배는 조선에 유익했다"는 이른바 '구보타 망언'을 쏟아내며 대립이 극에 달했습니다. 이에 한국 대표단은 회담 결렬을 선언하고 전면 철수했습니다. 이 사건은 광복 이후 한일 양국이 식민 지배 청산과 과거사 인식을 두고 벌인 갈등의 신호탄이었으며, 국교 정상화(1965년)까지 오랜 진통을 겪게 된 주요 원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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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스페셜] 14년의 굴욕과 격돌, 한일회담 막전막후
3. 신민당 전당대회 '40대 기수론'과 김대중 대선 후보 선출 (1970년)
📝 사건 설명
1970년 9월 29일 서울 시민회관에서 열린 제7대 대통령 선거 신민당 지명대회에서 만 46세의 김대중 의원이 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습니다. 당시 야당은 유진산, 이재형 등 구파 원로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으나, 김영삼·김대중·이철승이 주창한 '40대 기수론'이 거센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1차 투표에서는 김영삼 후보가 1위를 차지했으나 과반에 미달했고, 결선 투표에서 이철승계 표를 흡수한 김대중 후보가 대역전극을 펼치며 최종 승리했습니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 야당 정치사에서 세대교체를 이뤄낸 결정적 분수령이었으며, 이후 수십 년간 한국 정치를 이끈 '양김(김영삼·김대중) 라이벌 구도'와 박정희 유신 체제에 맞선 민주화 운동의 새로운 축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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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코리아] 40대 기수론과 세대교체의 정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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