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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오늘
2026-01-17

[오래전 오늘] 2026-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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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오늘 인포그래픽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 근현대사와 정치사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역사 해설가입니다.

1월 17일은 한국 현대사에서 권력의 집중과 인권의 목소리가 교차했던 상징적인 날입니다. 요청하신 2026년 1월 17일을 맞이하여, 과거 오늘에 있었던 가장 중요한 정치·역사적 사건 2가지를 선정해 정리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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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8대 대통령 박정희 취임식과 '유신 체제'의 본격화 (1973년)

**📝 사건 설명**

- **사건 개요**: 1973년 1월 17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제8대 대통령 취임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정권의 연장이 아니라, 1972년 10월 선포된 '명령에 의한 헌정 중단(10월 유신)' 이후 탄생한 **유신 체제의 공식적인 출발**을 의미했습니다.

- **전개 과정**: 박정희 정부는 1972년 10월 17일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했습니다. 이후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간선제 기구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도록 헌법을 개정(유신헌법)했습니다. 이 기구의 대의원들에 의해 99.9%라는 압도적 지지로 당선된 박정희 대통령은 1월 17일 취임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쥔 '한국적 민주주의'의 시작을 선언했습니다.

- **역사적 의의**: 이 사건은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 중 하나인 '유신 독재'의 서막이었습니다. 대통령에게 긴급조치권, 국회의원 3/1 임명권, 국회 해산권 등 입법·사법·행정을 모두 장악하는 초법적 권한이 부여되었으며, 이는 1979년 10·26 사태로 유신 체제가 종식될 때까지 한국 정치의 민주성을 크게 훼손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대한뉴스 제 915호-제8대 박정희 대통령 취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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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미야자와 기이치 일본 총리의 방한과 위안부 문제 사과 (1992년)

**📝 사건 설명**

- **사건 개요**: 1992년 1월 17일, 대한민국을 방문 중이던 미야자와 기이치 일본 총리가 국회 연설을 통해 이른바 '종신대(위안부)' 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일본 정부 차원의 사과와 반성의 뜻을 표명했습니다.

- **전개 과정**: 1991년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첫 공개 증언 이후, 위안부 문제는 한일 관계의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습니다. 방한 직전 일본의 역사학자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가 위안소 설치에 일본군이 직접 관여했다는 문서 증거를 찾아내면서 일본 정부는 궁지에 몰렸습니다. 이에 미야자와 총리는 한국 국회 연설에서 "필설로 다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한다"고 언급했습니다.

- **역사적 의의**: 이 연설은 일본 정부 수반이 한국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직접 사과한 첫 사례입니다. 이는 이후 1993년 '고노 담화'로 이어지는 중요한 징검다리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1992년 1월 8일 시작된 '수요시위'와 맞물려 위안부 문제를 국제적인 인권 이슈로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MBC 뉴스데스크 - 미야자와 총리 국회 연설, 정신대 문제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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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두 사건은 권력이 어떻게 집중되었는지, 그리고 과거의 아픔이 어떻게 공식적으로 기록되기 시작했는지를 보여주는 1월 17일의 중요한 기록들입니다. 오늘의 역사가 귀하의 통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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