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오늘] 2026-01-23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1월 23일**은 한반도의 안보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순간과 독립을 향한 뜨거운 투혼이 서린 날입니다. 역사 해설가의 시선으로 이 날의 주요 사건들을 정리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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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푸에블로호 납북 사건 (1968)
**📝 사건 설명**
1968년 1월 23일 오후, 원산 앞바다 공해상에서 미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USS Pueblo)**가 북한 초계정의 공격을 받고 납북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발생 이틀 전 북한 무장공비들이 청와대를 습격하려 했던 '1.21 사태(김신조 사건)'와 맞물리며 한반도를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로 몰아넣었습니다.
북한은 푸에블로호가 영해를 침범했다고 주장하며 승무원 83명(사망 1명 포함)을 억류했습니다. 미국은 항공모함을 동해로 집결시키며 보복 공격을 검토했으나, 결국 협상을 택했습니다. 약 11개월간의 지루한 협상 끝에 미국이 영해 침범을 인정하는 사과문(나중에 취소할 것을 전제로 한 형식적 서명)을 쓰고서야 승무원들은 판문점을 통해 귀환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냉전 시기 미·북 간의 직접적인 충돌 가능성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이며, 당시 박정희 정부가 미국의 태도에 불만을 품고 자주국방(향토예비군 창설 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역사저널 그날] 한반도 전쟁 위기! 푸에블로호 납북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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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김상옥 의사 '일 대 천' 시가전 및 순국 (1923)
**📝 사건 설명**
1923년 1월 23일 새벽,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일제 강점기 항일 무장 투쟁사의 가장 전설적인 장면이 완성되었습니다. 바로 의열단원 **김상옥 의사**의 순국입니다.
김상옥 의사는 앞선 1월 12일, 일제 탄압의 상징이었던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고 몸을 피했습니다. 일제 경찰은 대대적인 수색 끝에 그의 은신처를 찾아냈고, 1월 22일 밤부터 23일 새벽까지 효제동 일대에서 무려 1,000여 명의 무장 경찰이 김상옥 의사 한 명을 포위했습니다.
김 의사는 양손에 권총을 들고 지붕을 넘나들며 서너 시간 동안 격렬한 시가전을 벌여 일본 경찰 여럿을 사살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총알 한 발이 남았을 때, 그는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자결하여 고결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몸에는 무려 11발의 총탄 자국이 남아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이 사건은 당시 서울 시민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독립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일제 경찰 1,000명과 맞선 전설의 총잡이, 김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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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가의 한마디**
1월 23일은 국가 안보의 엄중함(푸에블로호)과 나라를 되찾기 위한 개인의 숭고한 희생(김상옥 의사)이 교차하는 날입니다. 과거의 위기와 투쟁을 기억하며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독립의 가치를 되새겨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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