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오늘] 2025-12-31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숨결을 전하는 역사 해설가입니다. **12월 31일**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날인 동시에,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꾼 굵직한 사건들이 교차했던 날이기도 합니다. 해방 정국의 혼란부터 민주화의 열기까지, 오늘 날짜에 기록된 결정적 순간 3가지를 정리해 드립니다.
---
### 1. 신탁통치 반대 국민총동원 위원회 결성 및 대규모 시위 (1945)
**📝 사건 설명**
1945년 12월 말,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에서 한반도에 대해 최대 5년간의 '신탁통치'를 실시한다는 결정이 알려지자 한반도는 거대한 혼란에 빠졌습니다. 이에 김구 선생을 필두로 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세력은 12월 31일 '신탁통치반대 국민총동원 위원회'를 결성하고 서울 시내에서 대규모 반탁(反託) 시위를 전개했습니다.
**전개 과정**: 12월 31일 오후, 서울 운동장에서 수만 명의 시민이 모여 "신탁통치 절대 반대"를 외치며 행진했습니다. 당시 임시정부 세력은 이를 '제2의 독립운동'으로 규정하고 강력한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역사적 의의**: 이 사건은 해방 정국에서 좌익과 우익이 극명하게 갈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반탁 운동은 우익 세력을 결집시키는 역할을 했으나, 결과적으로 남북 분단의 비극을 고착화하는 정치적 갈등의 시작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해방정국의 소용돌이, 신탁통치 논란)
---
### 2. 제5공화국 비리 조사를 위한 '5공 청문회'의 상징적 마무리 (1988)
**📝 사건 설명**
1987년 민주화 이후 탄생한 제13대 국회는 전두환 정권의 비리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국정조사 청문회'를 열었습니다. 1988년 12월 31일은 이 뜨거웠던 청문회 정국이 한 해를 마무리하며 국민들에게 민주주의의 힘을 각인시켰던 시기입니다.
**전개 과정**: 당시 TV로 생중계된 청문회는 전국적인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노무현 당시 의원이 날카로운 질문으로 '청문회 스타'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12월 31일 전후로 정치권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증언 문제와 5공 청산 범위를 두고 치열한 협상을 벌였습니다.
**역사적 의의**: 국민들이 권력의 핵심 인사들을 소환해 책임을 묻는 장면을 직접 목격함으로써,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확인한 사건입니다. 한국 정치사에서 의회 민주주의가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대한민국을 뒤흔든 1988년 5공 청문회)
---
### 3. '송박영신(送朴迎新)' - 제10차 촛불집회 (2016)
**📝 사건 설명**
2016년 12월 31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이후 시민들은 광화문 광장에 모여 제10차 촛불집회를 열었습니다. 이날 집회의 슬로건은 '박근혜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의미의 '송박영신(送朴迎新)'이었습니다.
**전개 과정**: 영하의 추위 속에서도 서울에만 100만 명 이상의 시민이 모였습니다. 시민들은 헌법재판소의 빠른 탄핵 인용을 촉구하며 평화적인 집회와 문화제를 이어갔습니다. 자정을 기해 보신각 타종 행사와 연결된 이 집회는 시민 혁명의 정점을 보여주었습니다.
**역사적 의의**: 연인원 1,000만 명을 돌파한 이 집회는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시민의 평화적 참여가 어떻게 헌법적 절차를 이끌어내고 정치를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전 세계에 보여준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2016년 마지막 밤, 100만의 촛불 '송박영신')
---
**역사 해설가의 한마디**: 12월 31일은 단순한 연말이 아닙니다. 격동의 시기마다 우리 국민들은 거리로 나와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고 정의를 외쳤습니다. 오늘 소개한 세 사건 모두 '대한민국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