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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오늘
2026-01-03

[오래전 오늘] 2026-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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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오늘 인포그래픽

반갑습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흐름을 짚어드리는 역사 해설가입니다.

입력하신 **1월 3일**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민족의 운명을 결정지으려 했던 격동의 순간들과, 전쟁의 아픔이 서린 결정적 장면들이 교차하는 날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두 가지 주요 사건을 정리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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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탁통치 반대 국민총동원 위원회 결성 및 대규모 시위 (1946년)

**📝 사건 설명**

- **사건 개요**: 1945년 말,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에서 결정된 '한반도 5년간 신탁통치' 소식이 전해지자 한반도는 거대한 혼란에 빠졌습니다. 이에 반대하여 1946년 1월 3일, 서울운동장(동대문운동장)에서 '신탁통치 반대 국민대회'가 열렸습니다.

- **전개 과정**: 김구, 이승만 등 우익 세력을 중심으로 결성된 '신탁통치반대 국민총동원 위원회'는 이날 수만 명의 시민과 함께 강력한 반탁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당초 좌우익 모두 반대했으나, 이후 좌익 세력이 찬탁(모스크바 결정 지지)으로 돌아서면서 남한 내 좌우 대립은 걷잡을 수 없이 격화되었습니다.

- **역사적 의의**: 이 사건은 단순한 시위를 넘어, 해방 정국에서 좌익과 우익이 완전히 갈라서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는 향후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과 한반도 분단의 비극으로 이어지는 현대사의 가슴 아픈 분수령이 되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해방정국을 뒤흔든 신탁통치 찬반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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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1.4 후퇴와 서울의 피란 행렬 (1951년)

**📝 사건 설명**

- **사건 개요**: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의 개입으로 국군과 UN군이 밀려나던 중, 1951년 1월 3일은 서울 시민들이 적의 점령을 피해 얼어붙은 한강을 건너 남쪽으로 필사의 탈출을 하던 정점의 날이었습니다.

- **전개 과정**: 1950년 흥남 철수 이후 밀려오는 중공군의 공세를 견디지 못한 정부는 1월 3일부로 서울 철수를 공식화했습니다. 영하 20도에 육박하는 혹한 속에서 수십만 명의 피란민은 보따리를 싸 들고 꽁꽁 얼어붙은 한강 위를 걸어서, 혹은 마지막 열차에 매달려 남하했습니다. 바로 다음 날인 1월 4일, 서울은 다시 공산군에게 점령당하게 됩니다.

- **역사적 의의**: '1.4 후퇴'는 한국전쟁 중 가장 뼈아픈 후퇴 중 하나로 기억됩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이산가족이 발생했으며, 전쟁의 참혹함과 민초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동시에 상징하는 사건입니다. 오늘날까지도 실향민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통한의 날로 남아 있습니다.

**📺 관련 영상 보기**

👉 [클릭] 관련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6.25 전쟁 최대의 위기, 1.4 후퇴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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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일은 이처럼 **해방 직후의 이념 갈등**과 **전쟁의 비극적 후퇴**라는 우리 현대사의 굵직한 상처들이 새겨진 날입니다. 이 사건들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의 가치를 다시금 되새겨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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